◈ 나귀가 되고 말이 되리라
동쪽 마을에 가서 나귀가 되고,
서쪽 마을에 가서 말이 되리라.
東村作驢 西村作馬
동촌작려 서촌작마
-서장 대혜 종고 선사
간화선의 제1지침서의 저자 대혜 스님은
서장이라는 강원의 교과서에서 이 말씀을 소개하였다.
한편 “수행을 잘 한 사람이 인과에 떨어지는가,
떨어지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있는데,
그 답으로 “인과에 미혹하지 않는다.”라는
백장(百丈)스님의 말씀도 있다.
위의 글은 “도를 크게 깨달은 남전(南泉)스님이 죽은 뒤에
어디로 갑니까?”라는 물음에 답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동쪽 마을에 가서 나귀가 되고 서쪽 마을에 가서 말이 되어라.”
“무슨 뜻입니까?”
“올라타게 되면 올라타고,
탔다가 내리게 되면 내린다.”라고 이러지는데,
이 말은 도를 깨달았으나 사는 일과 죽은 일은
모두가 인연을 따라서 흘러간다는 뜻이다.
다만 그 사실을 모르지 않고 모든 전후 사정을 다 알고
미혹하지 않은 상태에서 삶을 영위할 뿐이다.
그 삶이 어떤 모습이든 인과에 미혹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깨달음의 삶이란 자신의 업과 인연을 잘 알고
그것에 순응하여 혼연 일치하게 사는 일이다.
나귀가 되든 말이 되든 뒷산의 여우가 되든 마찬가지다.
하물며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는 것이
수행과 깨달음에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불교는 신선도를 닦아서 연년익수(延年益壽)하는 것을
수행의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유루복(有漏福)을 많이 지어서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정치를 잘 해서 큰 절의 주지가 되고 국회의원이나
장관이나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니다.
진리, 즉 참되고 바른 이치를 잘 알 분이다.
소산(疎山)스님은 크게 깨달으신 분이지만 박복(薄福)하여
당신이 사는 산에는 땔나무마저 없었다고 한다.
크게 깨닫고도 이러한 분이 수없이 많다.
도를 깨달은 일과 삶의 외적
모습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연이 그렇게 되어 동쪽 마을에 가서 나귀가 되고
서쪽 마을에 가서 말이 되면,
나귀 노릇, 말 노릇을 하는 것이다.
***참나를 찾아서 참되게 살아가라()()()***
***화곡산 화엄동산에서 무심행 원오 합장***